Hyun Hong

김규식 작가의 첫 개인전 서문이다. 이론과 작품과의 관계에 대해 나름 진지하게 써내려갔다. 사실 작품에 대한 비평은 또 다른 예술행위다. 작품만 예술은 아니다. 두 예술이 서로 상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한쪽이 기울어서는 안 된다. 훌륭한 작품을 평했다고 그 글이 좋은 평글이 되는 것도 아니며, 훌륭한 글로 해석이 됐다고 해서 그 작품이 좋은 작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사진 안엔 아무것도 없을 지도 모른다. 작가들이 이론으로 포장하려는 위험한 발상은 하지 않았으며 한다. 사진안엔 한 문장만 있으면 족할 것 같다. 아니 한 단어래도 좋다.

아파트먼트 전시서문/현홍

작가들은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을 할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사진작가들 말입니다. 그냥 지나쳐도 될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본 것을 사진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입니다.

규식이가 저에게 서문을 부탁하며, 이런 말을 하더군요.

“ 형, 내 작품 너무 스트레이트하지 않아요? 요즘 현대 예술은 뭔가 난해하면서 개념적이어야 하는데... ”

대답할 말이 너무 궁하더군요. 사실 저는 현대예술 작품보다 더 난해한 것들이 그 작품을 설명하는 글들이었습니다. 도록의 서문이나 여기저기의 해설들. 여러분들도 혹시 저와 같은 경험들을 해보셨는지요? 그리고 저처럼 자신의 무식을 부끄러워 하셨는지요?

작품은 뭐 그런 것 같은 데, 작품을 둘러싼 이론-철학들은 점점 풍성해집니다. 그것의 당위 -현대 예술이 왜 그러해야 하는지에 대한- 를 논증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론적 또는 철학적 기획력이 매우 단단하기에, 함부로 딴지를 걸기에는 주제 넘어 보입니다. 실제로 현대 예술의 해석에 있어 상당한 진리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요. 그러나 그들 이론들이 우리 모두의 각각의 예술적 영역-예술에 관계하는 모든 영역-의 공통분모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래 저는 특정한 예술개념이나 이론과 같은 양식적인 것들이 과잉으로 흘러 다니고 있음을 직감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끼어들고, 무리하게 예술을 정의하려 합니다.

현대 예술이라는 모드 -모드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으나- 가 있다면 동시에 그렇지 않은, 거기서 비켜 서있는 것들도 인정해야 하지 않는지요. 저는 제프 쿤스의 사진 작품도 좋아하지만 안셀 아담스의 작품들도 즐겨 감상합니다. 사진이라는 <형식미학>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흐름을 거부할 수는 없으나, 소위 말하는 가장 사진적인 것-그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또 사실 궁합니다만- 에 대한 향수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위의 언급은 수용자의 미적 판단에만 국한될 수 있는 문제이겠으나, 좀 더 넓게, 생산자- 작품이라는 물성- 작품 소통의 문제- 수용자와 작품의 관계성 등 예술에 이어지는 여러 양상에 대해서도 아직 우리에게는 각각의 태도에 있어 많은 다양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한 예를 들어, 갤러리 또는 미술관 그리고 그곳에서 편안하게 안주하는 작품들을 향해 대중과의 소통의 문제, 또는 예술제도적인 문제, 나아가 그러한 시스템을 지배계층의 기득권 유지기제로 이해하는 목소리- 매우 설득력이 있는- 가 있는가 하면 반면에 어떤 이에게는 미술관이 다음과 같이 어떤 특별한 공간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작품을 통해 자신과 그리고 주위의 것들과 조용히 조우할 수 있는 그러한 공간.

예술은 자꾸만 대중을 지향하는데 반대로 대중은 예술을 지향하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여러분의 이해와 태도는 결국 여러분의 몫이 되겠지만 조금만 더 진지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도 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제가 조금 정리가 되었는지 이 글 처음의 규식이의 질문에 답할 것이 생겼습니다.

“그건 고민의 대상이 아니야.”

그건 작가들 저마다의 태도의 문제고 선택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현대 예술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혹 누군가의 특정한 이론과 유행에 결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작가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또는 작가들이, 필요 이상으로 이론-철학적, 미학적, 사회학적 특정 이론-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작가는 작품을 생산하고 연구자들은 끊임없이 이론을 생산하는 것이 두 집단 모두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며, 상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이론에 대한 안목을 높이는 것과 이론에서 작가적 상상력을 구하려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라 사려됩니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이론을 통해 작품의 소재를 구하려하는, 이론을 역이용해 작품의 내용을 규정지으려하는 시도는 위험한 태도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작가는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이론과 입장을 새로이 생산해 내야하며 이론연구자들에 의해 재생산되는 것입니다.

이제 작가의 작품을 한 번 볼까요.

규식이는 우리가 그토록 자주 보는 아파트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것을 사진작가는 사진으로 만들어냅니다. 이유를 들자면 제 생각엔 작가는 현실에서 살짝 비켜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살이에 매몰 되 있자면 보이는 것은 항상 그대로이고, 자극이란 없을 테지요. 항상 있는 것도 다시 한번 보고, 또 한번 새롭게 보고. 그들은 이렇듯 흔한 세상일지라도 그것과 밀고 당기는 모종의 긴장관계 속에서 약간은 영민해야 하는 법이죠. 누군가 시인은 종족의 더듬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꼭 시인들만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눈으로 직접 보는 아파트와 이렇게 갤러리라는 공간에 와서 조용히 사진으로 보게 되는 아파트는 사뭇 그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작가는 사진들을 통해서 우리들로 하여금 아파트를 다시 한번 반성하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담백한 아파트의 접근이 오히려 우리들의 눈을 더 또렷이 만들어 줍니다.

물론 사진 표현상의 아파트의 미학적 배치라든지 풍부한 디테일도 볼거리지만, 아파트라는 소재는 우리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히 사회문화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사진 속의 여러 아파트들을 보면서 문득 요새 텔레비전 광고들이 생각나더군요.

어이없는 광고들이 난무합니다.

사는 아파트에 따라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인격이 판단된다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천박한 카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의 가치가 아파트 평수대로 분할이 되고, 우리의 삶의 질이 그것의 인테리어에 의해 결정됩니다. 천민자본주의는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요. 우리들의 정신세계가 아파트의 격자 모앙 그렇게 모가 나 있는 것일까요? 사람들의 삶이 여기 저기 못생기게 박혀있는, 그래서 주의의 것들과 화해하지 못하는 저 아파트마냥 일그러져 있는 것일까요?

건축은 시대문화의 중요한 풍광이라고 하던데 지금 우리 시대는 저 콘크리트마냥 너무도 딱딱하고 각이 날카롭습니다.

지금 2004년의 우리 주거문화의 풍속입니다. 사진을 찬찬히 바라보시고 여러분들의 상상의 단계를 높이십시오.

저와 반대로, 아파트 여기저기서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요.